1.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영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히지 않는다. 내게 레옹이 그런 영화다. 처음 본 게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 몇 년이 지나 다시 봐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진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킬러의 세계 속에서도 한없이 순수한 감정을 담아낸, 그야말로 감성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레옹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장 르노의 무뚝뚝한 얼굴, 나탈리 포트만의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게리 올드만의 소름 끼치는 연기까지. 이 세 배우가 만들어낸 독특한 긴장감과 따뜻한 유대감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이 글에서는 레옹의 스토리와 캐릭터, 연출, 그리고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혹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부디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2. 레옹과 마틸다의 기묘한 동거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킬러 레옹(장 르노)은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임무만 수행하는 냉혹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작은 틈이 있다. 바로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그는 이 화초를 정성스럽게 돌보는데, 이 장면은 후반부의 중요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반면, 같은 건물에 사는 12살 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는 너무 일찍 세상의 쓴맛을 알아버린 아이였다. 그녀의 가족은 엉망진창이다. 아버지는 마약을 거래하고, 새어머니와 이복형은 마틸다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 단속반 소속이지만 사실상 부패한 경찰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가 마틸다의 가족을 몰살해 버린다. 마틸다는 우연히 그 현장을 피해 살아남고, 본능적으로 옆집 레옹의 문을 두드린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마틸다는 곧 죽을 것이 뻔했다. 레옹은 고민한다. 아무런 감정 없이 살아온 그가, 이 어린 소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연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킬러 레옹이 살인을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아직 인간적인 따뜻함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3.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는 두 사람
레옹과 마틸다는 함께 지내며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마틸다는 가족을 몰살한 스탠스필드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고, 레옹에게 킬러가 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처음엔 거절하던 레옹도 결국 마틸다에게 총을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원칙을 강조한다.
"나이프부터 시작해야 해. 총은 마지막 선택이야."
이 대사는 레옹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나름의 원칙과 방식이 있는 킬러다.
마틸다는 레옹을 따르며 점점 더 그의 세계로 빠져든다. 때로는 위험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끔은 레옹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옹은 그런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마틸다는 아이고, 레옹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둘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마틸다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레옹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게 된다.
4. 스탠스필드 – 영화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는 악역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다.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광기와 잔인함,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이다.
특히 마약을 삼키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그리고 그의 대사.
"에브리원!!!"
그가 부하들에게 명령하며 소리치는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많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게리 올드만은 이 영화에서 연기력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악역을 단순한 '나쁜 놈'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인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5. 레옹의 마지막 선택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마틸다는 스탠스필드를 죽이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지만, 곧 붙잡히고 만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레옹은 경찰서를 습격하고, 결국 그녀를 빼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레옹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경찰 특공대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듯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스탠스필드에게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죽기 직전, 그는 마지막 선물을 남긴다.
"이건, 너한테야."
레옹이 스탠스필드의 손에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핀 뽑힌 수류탄이었다.
폭발과 함께 스탠스필드도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레옹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마틸다는 레옹이 남긴 화초를 들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러 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그 화초를 땅에 심는다.
"이제 여기서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6. 레옹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정한 명작으로 남은 이유는, 거친 세계 속에서도 피어난 순수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레옹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사랑했고, 마틸다는 삶의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 관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희생, 그리고 성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먹먹한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모두 한때는 마틸다였고, 언젠가는 레옹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