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살다 보면 가끔 문득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위해 그분들은 어떤 희생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꼭 봐야 할 영화가 있다. 바로 2014년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한 개인의 삶에 녹여내며 우리 부모 세대의 희생과 헌신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도록 만든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부모님, 혹은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져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며, 덕수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2. 덕수의 인생,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
국제시장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격변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덕수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조명한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의 궤적은 곧 우리 부모 세대가 걸어온 길과 다름없다.
1) 1950년, 흥남철수 – 너무 이른 이별
영화의 첫 장면부터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덕수의 가족은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흥남철수 작전에 탑승하려 한다. 미군 군함에 타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상황. 그 와중에 아버지(정진영 분)와 막내 여동생은 끝내 배에 오르지 못하고, 덕수는 마지막 순간 아버지에게 "가족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배가 떠난다.
아버지를 잃고 부산에 정착한 덕수. 어린 나이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떠안고,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여기서부터 덕수의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가족"을 위한 길이 된다.
2) 1960년대, 독일 파독 광부 – 고된 노동과 첫사랑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덕수가 선택한 길은 독일 파독 광부였다. 1960년대 실제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고, 덕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좁고 어두운 갱도 속에서 매일같이 석탄 먼지를 마시며 일하는 그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현실이었다.
그곳에서 덕수는 간호사로 일하는 영자(김윤진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덕수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덕수의 인생은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다. 그는 독일에서도 온갖 고된 일을 하며 번 돈을 꼬박꼬박 한국으로 보낸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도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했던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3) 1970년대, 베트남전 –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한 번 더 돈을 벌기 위해 떠난 곳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전쟁터였다. 군인이 아닌 민간 군수업체 직원으로 갔지만, 그곳은 여전히 목숨을 담보로 한 곳이었다. 총탄이 날아다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도 덕수는 꿋꿋이 버틴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덕수가 친구 정식(오달수 분)과 함께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순간이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라는 그의 대사는 단순한 영화 대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다.
3. 황정민의 연기 – 덕수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덕수 그 자체였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황정민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을 덕수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덕수가 TV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며 아버지와 여동생을 떠올리는 장면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덕수는 노인이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그날의 소년이었다. 흐느껴 우는 그의 모습에 극장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덕수가 마지막까지 가게를 지키며 가족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황정민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돋보였다. 표정 하나만으로도 덕수의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4. 영화가 남긴 것 – 우리 부모님의 희생을 기억하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게 된다. 그만큼 국제시장은 가족에 대한 감사함과 부모 세대의 희생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영화다.
덕수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고, 그의 선택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부모님이 젊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들도 한때는 꿈이 있었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걸 포기해야 했고, 대신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바쳤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부모님의 인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5. 마치며 –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국제시장은 단순한 역사 영화도, 신파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가족 이야기이자, 부모님 세대의 삶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우리 아버지도 저랬을까?"
"엄마가 예전에 독일에서 고생했다고 했었는데…"
"부모님께 한 번 더 잘해야겠다."
이 영화를 보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고 싶어진다면, 이미 이 영화는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국제시장은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